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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성성 60주년 맞은 윤공희 대주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 작성자 : 광주가톨릭박물관
  • 작성일 : 2023-11-03
  • 조회수 : 112

주교 성성 60주년 맞은 윤공희 대주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광주가톨릭평화방송) 노진표 기자 = 천주교광주대교구는 오늘(20) ‘윤공희 대주교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번에 봉헌한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는 한국 천주교 주교 가운데 처음이며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현존하는 주교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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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가 20윤공희 대주교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를 봉헌했다.

 

감사미사는 이날 오전 1130분 광주대교구청 성당에서 윤 대주교가 주례한 가운데 봉헌됐으며 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를 비롯해 전임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사제, 수도자, 신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윤 대주교는 강론에서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으며 언제나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당부했습니다.

 

미사 도중 열린 축하식에서는 광주대교구청 공동체가 윤 대주교의 주교성성 6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꽃다발을 전달했고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여성위원회가 축하의 의미를 담아 준비한 꽃다발과 예물을 전했습니다.

 

, 성바오로딸수도회 소속 수녀들이 축가를 부르며 윤 대주교의 주교성성 60주년을 축하했습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축사에서 "윤 대주교는 언제나 사제들에게 아주 자상하고 정감있게 대해주신 분"이라며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편안한 나날을 보내길 바라고 기도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윤 대주교는 답사를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면 좋을 것 같다""하느님의 뜻대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언제나 기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자"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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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희 대주교가 '주교성성 60주년 축하식'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축하식이 끝난 이후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식당에서 진행된 축하연에 참석한 윤 대주교는 광주가톨릭박물관을 찾아 대구대교구 김종숙(요안나) 작가가 윤 대주교의 주교성성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제작해 기증한 흉상을 감상하며 전·현직 교구장들과 담소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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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희 대주교(가운데)와 김희중 대주교(오른쪽), 옥현진 대주교(왼쪽)가 광주가톨릭박물관에서 대구대교구 김종숙 작가가 윤공희 대주교의 주교성성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제작해 기증한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아울러 박물관을 둘러보며 광주대교구가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편, 1924118일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에서 41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난 윤공희 대주교는 19463월 함경남도 덕원신학교에서 철학과와 신학과를 마치고 부제가 됐습니다.

 

이후 1950, 초대 원주교구장을 지낸 자신의 신학교 동기이자 세 살 위였던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월남했으며 서울 가톨릭대학교 전신인 성신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노기남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아 서울 명동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했습니다.

 

6.25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잠시 내려온 윤 대주교는 부산 UN포로수용소에서 종군신부를 맡았고 전쟁이 끝난 1954년에는 부산 가톨릭도서관 부관장을 거쳐 서울 성신중·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습니다.

이후 19569월 로마 유학길에 올랐던 윤공희 대주교는 로마 울바노대학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0년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윤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총무를 맡았으며 3년 뒤인 1963107일 교황청으로부터 수원교구장에 임명된 데 이어, 같은 해 1020일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또한 19631221일 초대 수원교구장에 오른 윤 대주교는 1967324일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겸임하도록 교황청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하기 전인 19684월까지 1년 동안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수행했습니다.

이 밖에도 윤 대주교는 수원교구장 재임 당시인 19674월부터 197010월까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임시의장을 거쳐 19753월까지 주교회의 부의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윤 대주교는 지난 19731025일 대주교로 승품됨과 동시에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했으며, 교구장으로 재임할 당시 대외적으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천주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윤 대주교는 광주민중항쟁이 끝난 뒤 당시 서울수도경비사령부에 있던 군종신부의 주선으로 19807월 하순쯤 국보위 위원장이던 전두환씨를 만나 당시 구속됐던 사람들을 모두 사면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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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희 대주교가 광주가톨릭박물관을 둘러보며 광주대교구가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김수환 추기경과 사면에 대한 논의 결과 자신이 직접 건의하겠다며 198141일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만나 사형수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습니다.

 

윤공희 대주교는 1981510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공동으로 주례한 가운데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미사를 봉헌하는 등, 5월 항쟁이 끝난 뒤에도 광주의 아픔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윤 대주교는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을 이끌어 냈으며 광주대교구장에 취임한지 27년만인 지난 20001130일 교구장으로서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았으며 올해로 주교성성 60주년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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